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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 마르크스의 종교비판

      • 빤스목사
      • 2025.07.16 - 09:36

    칼 마르크스의 종교비판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기본 내용은 오경환씨의 종교사회학에서 고찰한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10여페이지 되는 글이지만, 읽어보면 왜 마르크스는 종교를 비판하게 되었고

    왜 '종교가 민중의 아편'이라고 말했는지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사회사상

     

     

     

     

     

    마르크스의 사회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종교비판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살고 있던 당시 독일의 시대 상황과 기독교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비판한 종교는 사실 사회에 대한 비판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마르크스의 사회사상을 소개하기 위해 첫 번째로, 그가 살고 있던 당시의 사회 정치적인 배경을 살펴볼 것이다. 이런 배경 하에서 나온 공산당 선언 내용을 살펴본다.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종교비판의 내용은 무엇인지 또 그가 영향받은 사상은 무엇인지를 간략히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그의 종교비판이 가지는 한계점을 차례대로 살펴본다.

     

    • 마르크스의 종교론인가?
      •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맑스.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16pixel, 세로 421pixel , 그는 누구인가?

    카를 하인리히 마르크스(독일어: Karl Heinrich Marx, 1818년 5월 5일~1883년 3월 14일)는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라인란트 출신의 공산주의 혁명가, 역사학자, 경제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이다. 1847년 공산주의자동맹을 창설했다. 1847년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공동집필해 이듬해 2월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과 1867년 초판이 출간된 《자본론》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레닌은 마르크스를 이론적 기반으로 삼았다.

      • 유럽의 상황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유럽 국가에서 권력을 장악할 경우 실시해야 할 정책 열가지를 제안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토지 몰수와 국유화

    2) 고효율의 누진세

    3) 상속권 폐지

    4) 망명자와 반역자 재산 몰수

    5) 금융기관 국유화

    6) 운송수단 국유화

    7) 국영 공장 확충과 토지 공동이용

    8) 의무 노동제 도입과 농업을 위한 군대양성

    9) 농업과 공업의 결합, 도시와 농촌 차이 해소

    10) 아동 무상교육, 아동노동 폐지, 교육과 생산의 결합

    마르크스의 이 열 가지 제안을 통해 우리는 당시 유럽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살펴 볼 수 있다. 당시 유럽은 토지와 사회자본의 사유화를 통해 빈부격차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으며, 이로 인한 불만이 사회 전반에 짙게 깔려 있었다. 또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의 서두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여 당대 유럽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낡은 유럽의 모든 권력들이,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비밀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한 신성동맹을 체결했다. 권력을 쥔 적대 세력에게 공산당 같다고 비난받지 않은 야당이 어디 있으며, 더 진보적인 야당과 반동적인 적에게 공산주의라는 비난의 화인(火印)을 되던지지 않는 야당이 어디 있는가?”

      • 공산당 선언』

    ‘공산당 선언’을 읽어본 사람들에게 그것을 단 한 줄로 표현하라면 모두들 다음 문장 하나로 축약 할 것이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공산당 선언’은 전형적인 정치적 선언문이다. 마르크스는 이 선언문을 통해 유럽 사회의 계급화와 착취가 종결되기를 원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258c5ec7.3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00pixel, 세로 278pixel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 자유인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의 장인과 도제, 요컨대 언제나 적대적인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이 투쟁한 바, 이 투쟁은 사회 전체의 혁명적 개조로 끝나거나 투쟁하는 계급들의 공도동망(共倒同亡)으로 종결되었다.”

    마르크스는 사회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적대적인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계급들 사이의 투쟁이 역사를 변화시키는 동력이라고 말한다. 예전의 사회가 그랬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도 적대적인 계급이 있는데, 생산수단 또는 자본을 소유한 부르주아계급(부르주아지)과 자본을 소유하지 않은 프롤레타리아계급(프롤레타리아트)이 바로 그것이라고 보았다. 자본주의 사회는 서로 투쟁하는 이 적대적인 두 계급의 통일체다. 마르크스는 이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함으로써 인간의 착취가 영원히 종식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이 생각에 대해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에 ‘공산당 선언’을 다음과 같은 문단으로 마무리 한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받을 일로 간주한다. 공산주의자는 현존하는 모든 사회질서를 폭력적으로 타도함으로써만 자기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음을 공공연하게 선포한다.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전율하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온 세계다.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종교비판

    마르크스는 사회사상가이지 종교학자는 아니다. 또한 그는 종교에 관하여 어떤 체계적인 논술을 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가 젊었을 때 저술한 논문들(1843-헤겔 법철학 비판, 1844-경제학적 및 철학적 유고, 1845-포이어바흐에 대한 명제 등)에서 그의 종교에 대한 생각을 볼수 있다. 마르크스는 “독일에서의 종교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라고 단언하였다. 이 말은 마르크스의 사회논의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열쇠와도 같다. 왜냐하면 당시 독일은 루터교가 프러시아의 독재정부를 강력하게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체제와 사회체제를 비판하자면 종교부터 비판하지 않을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교 안에서 절대적 진리라는 궁극적 목적을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사회과학자이다. 따라서 그는 사람들의 종교적 요청을 현실적인 차원에서 즉, 절대자에 대한 요구가, 역사적으로 규정되는 개개인의 대립적 이해관계를 차폐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마르크스의 여러 논의들은 종교가 역사와 현존하는 사회적, 정치적 세력들의 무기로 이용되고 있다는 근거에서 “종교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임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하는 본질적인 정의를 제시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종교의 발생, 종교의 미래, 종교의 사회적 역할 등에 대해서 주로 논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종교는 기본적으로 천주교와 기독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의 저작에서 종교에 대한 비판내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의 사회원리들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의 분리가 필연적이라고 설교하면서, 피억압자들에게는 지배계급이 자신들에 대해 자비로와질 것을 경건하게 기대하라고 가르칠 뿐이다...

    기독교의 사회윤리에 있어서 지상의 모든 악행들의 댓가는 장로법원 고문관의 수작에 의해 하늘나라로 전가되어 버린다. 그런 까닭에 결국 지상에서 그러한 비행들이 그 이상 악해질 수 있는 상황을 정당화시키고 만다...

    기독교의 사회원리들은, 피억압자들의 처참한 현실은 원죄 및 여타 죄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라고 치부하거나 혹은 무한한 지혜를 가진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들에게 부과하는 시련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의 사회원리들은 비겁, 자조, 굴욕, 순종, 실의 등 요컨대 시정잡배들이 갖는 모든 속성들을 미화시켜 놓았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시정잡배로 취급받고 싶지 않다면 빵에 연연해 하지 말고 용기와 자부심, 긍지 그리고 독립심 등과 같은 것들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의 사회원리들은 비열하고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적이다...

    기독교의 사회원리들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거론하기로 하자...

    『라인관찰자』지의 공산주의

    종교나 철학 또는 일반적 이데올로기 등의 입장에서 행해지는 공산주의에 대한 비난은 진지하게 검토할 만한 가치가 전혀 없다.

    기독교의 금욕주의에 사회주의의 색채를 칠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기독교 정신은 이제까지 사유재산이나 결혼, 국가 등에 대해 비난해 오지 않았던가? 대신에 기독교는 가난해야 함과 독신, 육체적 고행과 금욕생활 교회중심주의 등을 강조해 오지 않았던가? 기독교 사회주의는 귀족적인 성직자들이 자신들의 현실에서의 짜증을 신성화하려는 성수(聖水)에 불과하다.

    『공산당 선언』2장 3장에서 발췌

    종교는 현실세계의 반영물에 불과하다. 상품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는 상품 생산자들이 (전반적으로) 자신들의 생산물을 상품으로서 그리고 가치로서 취급하는 사회적 생산관계를 맺고 따라서 자신들의 사적 노동을 동질적 인간노동의 차원으로 환원시켜버리는 사회이다. 그런데 그런 사회에 가장 알맞은 종교의 형태는 추상적 인간(총체적이고 구체적인 사회의 여러 관계로부터 분화되어 어떤 일면만이 파악된 그리고 그것에 머물러 인식된 인간)을 예찬하는 기독교이며 특히 그것의 부르조아적 변신인 프로테스탄티즘과 이신론이 가장 안성맞춤이다...

    어떠한 종교사든지 사회의 물적 기반을 무시한 것이라면 그것은 맹목적인 역사이다...

    『자본론』1장에서 발췌

     

    • 종교론
      • 본질

    마르크스는 헤겔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역사에 대한 변증법적 사고와 노동의 중요성, 인간의 사회적 본성, 인간의 소외에 대한 인식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헤겔의 관념론이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역사를 강조한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적 시각을 받아들였다.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인이 믿는 하나님은 따로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라 인간이 소망하는 것에 대한 투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이런 종교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무신론을 주장하였다.

        • 종교론

    포이어바흐가 활동하던 19세기 초반 독일은 매우 낙후되어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봉건주의를 벗어나 자본주의로 들어섰는데도 독일은 아직도 농업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이유를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찾았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봉건제도의 질곡속에서 여러가지로 착취를 당하던 농민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왜냐하면 정치적 경제적으로 농민을 억압하던 중세 봉건제도의 지주인 교권에 대하여 루터가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터는 농민을 배반하고 군주에 편에 섰다. 그는 기독교인은 보이지 않는 신의 왕국에 살지만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신이 그 통치권을 부여한 군주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이 시민혁명을 통해 정치적 자유를 쟁취해야 하는데, 루터는 내면의 자유속에 안주하는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결국 독일의 시민계급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되고 만 것이다.

    이런 독일의 낙후된 상황속에서 독일의 철학자들은 헤겔을 중심으로 낙후된 독일을 철학적으로 극복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런 헤겔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 포이어바흐이다. 헤겔사후 진보적인 철학집단으로 '헤겔 좌파'가 나타나게 되었다. 진보적이고 반종교적이고 무신론적이었던 그들은 독일의 정치사회적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독일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피하기 위해 정치와 야합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종교에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절대국가를 이념적으로 지탱해주고 있는 종교의 본질이 밝혀지고 그 오류가 알려지게 되면 자연히 절대국가도 무너지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포이어바흐는 개인의 영혼이 사후에도 존속한다는 종교적 주장에 반박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무'와 같은 내세에 눈을 돌리지 말고 현세 속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라고 말한다. 삶은 일회적이며 두번 다시 오지 않는다고 주장한 그의 이 책은 기독교인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포이어바흐는 하나님은 인간이 성취하고자 하는 힘과 재능 미래와 완성을 표현하는 상징적 언어에 불과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종교는 인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높은 열망을 절대적인 것으로 투사해서 숭배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을 무능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간주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자신 안에서 분열이 발생하고 자기 소외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 소외의 한 형태이며, 인간이 자신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면에서 인간이 자신의 소망을 투사해서 절대적인 하나님을 만들어놓고 그 사실을 모른채 두려워하고 복종을 서약하는 것은 인간 최악의 비극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도 동일하게 종교는 인간의 투사이고 인간의 생산품이며 인간의 소외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종교론 전체를 동의하지는 않았다. 우선 그가 인간의 본성적인 면만 강조해서 사회적 맥락은 등한시했다는 점, 그리고 인간을 역사와 분리해서 고찰한다는 점은 잘못된 것으로 보고 '인간을 역사적 과정 안에서 그리고 특수한 역사적 시대 배경에 비추어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포이어바흐는 사회적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보다 실천적으로 어떤 사회적 환경이 종교를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보고, 종교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 발생원인

    마르크스에 의하면 종교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음과 같다.

    종교는 불의하고 비인간적이며 냉혹한 사회에서 발생한다. 또 특별히 소외 가운데서 고통스럽게 사는 인간들이 자신의 소망을 투사하고 종교를 만든다. 그리고 종교는 하나의 의식으로 사회에 의하여 생산되는 사회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좋은 사회와 인간적인 사회에서는 종교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래서 종교가 있다는 것은 그 사회가 불의하고 비인간적이며, 그 사회에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회에 소외가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이 소외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변두리에 있는 산업체의 노동자들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소외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사회제도에 의해서 산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극복될 수 있다고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의 공장체제를 비판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노동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점차로 사회 전체를 소외로 몰아넣는 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생산양식'이라고 규정하였다.

        • 3가지

    자연에서의 소외 - 노동자가 자신안에서 통일성을 상실하고 육체가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 낯선 것이 되고 있다고 느끼는 상태. 공장의 노동은 노동자의 육체를 단순한 직업의 도구가 되게 한다. 노동은 기쁨을 제공하지 못하고 싫증을 느끼게 하고 공장밖에서 활동에서도 광적이고 난폭한 행동을 취하게 된다. 그래서 주변의 환경에 대해 동일화를 체험하지 못하고 하나의 이방인이 되고 만다.

    자신에서의 소외 - 공장노동은 노동자를 자신에게서 분리시킨다. 자신에게서의 소외의 근본적인 원인은 노동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생산품이 그를 떠나서 자본가의 재산과 힘의 근원이 되는데 있다. 나아가 노동자의 일부인 상품은 자본가에게로 넘어가서 노동자를 지배하고 위협하는 힘으로 둔갑한다. 노동자가 최선을 다해 만든 생산품은 빼앗기고 만다. 그래서 노동자는 하나의 상품이 되기 때문에 자신의 인격마저 상실한다.

    동료로부터 소외 -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는 생산 과정에서의 위치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우정이나 꿈 가치들을 가질수 없게 된다.

        • 긍정성

    소외는 자본가에게도 있다. 하지만 소외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노동자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소외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사회의 불안을 더욱더 깨닫게 한다. 또 사회와 전적으로 동일화하여 안주하지 못하게 하고 그 사회를 배척하며 사회질서를 초월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만이 허위 의식을 극복하고 참된 의식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만이 사회 혁명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보았다.

      • 생성과 소멸
        • 생성

    자본주의 하에서의 분업은 생산수단 사유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생산수단을 잃은 노동자들은 노동만 상품으로 제공할수 밖에 없게 되었다. 노동을 상품으로 제공하고 받는 임금은 상품이 낼 수 있는 잉여가치를 포함하지 않고 받는 것이기에 부족하다. 결국 노동자는 계속 가난하고 자본가는 노동자의 상품을 통해, 노동자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계속 증가하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노동자가 만들어낸 생산품은 노동자에게서 분리되어 소외된 상품이 된다. 그리고 그 상품(인간 손의 산물)은 신비스럽게 숭배의 대상(물신)이 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 정신의 산물인 종교와 하나님이 신비스러운 특성을 얻어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경제적 소외가 계속되고 물신숭배가 계속되면 종교는 계속 존재한다. 마르크스는 베버가 개신교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연결시키기 이전부터, 개신교는 개인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생산수단의 개인소유와 노동자의 고립을 초래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매우 부합하는 종교라고 보았다.

        • 소멸

    종교는 특정의 사회 조건 아래에서만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종교를 발생시키는 사회조건에 대한 비판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종교는 인간의 소망의 투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종교에서 얻는 행복은 '환상적 행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종교를 없애는 것은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과 같다. 종교를 만들어 내는 것은 고통스런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한 현실을 제거해야 종교가 없어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종교만 없애는 것은 실제로 의미없는 행동이라고 보았다. 종교비판 다음에는 정치비판이 뒤따라야 하고, 혁명의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면에서 종교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인간관계가 '완전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되거나 ‘생산과정이 노동자들의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통제 아래, 노동자의 자유로운 결사체에 의하여 운영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산관계 성취하기 위해서는 사유 재산을 폐지하는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자연스럽게 혁명이 올것으로 보았다. 자본주의 체제안에서는 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될것이고, 무산자 계급이 늘어나고 생활조건은 점점 나빠져 변증법적인 과정에 의해 사회주의 대혁명이 발생하게 된다고 본 것이다. 그 결과로 독점 자본가가 제거되고 생산수단은 사회화 또는 국유화되어 계급과 분업이 폐지되어 지배 계급의 억압 수단이던 국가와 인간 소망의 투사인 종교는 사라지게 된다.

    이런면에서 종교를 반대하는 적극적인 투쟁은 필요하지 않고, 사회조건이 변해서 경제적 소외가 사라지면 종교에 대한 요구가 자연적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았다. 즉 공산주의 사회가 도입되면 종교는 소멸할 것으로 생각했다.

      • 미래

    마르크스의 종교론에는 '인간주의적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적인 조건들을 대치하는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 조건들이 창조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인간이 비하되고 무시되고 돈이 신처럼 받들어지는 이기주의적인 사회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들이 진정한 인간이 되어 모든 가능성을 실현하면서 자유롭고, 존경받으며, 자율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중단되어야 한다.

    마르크스가 종교를 배척했던 이유는 종교가 인간의 비하를 가져오고, 인간을 억압하는데 협력하고 인간의 존엄성 실현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사회적 역할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견해가 종교비판의 원인이 되었을만큼 마르크스에게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역할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마르크스는 역사가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보았다. 사회에는 지배하고 억압하는 계급이 있고 억압당하는 피지배 계급이 있다. 그런데 종교는 지배계급의 편을 들고 민중에 대한 억압에 동조하는 억압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종교는 불의하고 비인간적인 사회 조건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종교가 불의하고 비인간적인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고 옹호하며 정당성을 보여주려고 한다.

    또 마르크스는 그 유명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고 말함으로서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효과적으로 전하려고 했다. 종교도 아편처럼 고통을 근본적으로 없애지는 못하고 잠시동안만 없앨 뿐이다. 그래서 종교에서 얻는 행복도 환상적일 뿐이고 중독자를 만들고 무기력한 인간을 만들어 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민중에게 내세에서의 환상적인 행복을 주어 위로하고 진정한 고통을 제거하는데 필요한 투쟁의지를 말살한다고 비난했다.

    민중과 무산자들만이 사회혁명을 일으킬 중심주역인데 종교는 그들에게 현실에 안주하고 투쟁의지를 포기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불의하고 비인간적인 사회 조건과 제도가 유지되도록 돕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가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비판하는 이유는 프러시아의 국교의 행태 뿐만 아니라 이전의 행동들에 대해서 때문이기도 하다. (고대의 노예제도를 정당화, 중세기 농노제도 찬양, 무산계급에 대한 억압 옹호-지배계급의 자비를 기대하게 만듦) 기독교가 모든 불행에 대한 보상을 천국에 떠맡기고 지상에서의 모든 불행의 지속을 정당화 한다고 비판했다.

     

    • 종교론의 한계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며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종교를 비판하며 종교가 인간의 비하를 가져오고, 인간 억압에 협력하며, 인간의 존엄성 실현에 해로운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며 비난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이론을 비판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그의 비판 안에도 인간주의적 의도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 종교이론 비판

    첫째, 그의 예견대로 자본주의 체제가 악화일로의 길을 걷고 무산 대중의 생활이 계속 나빠진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사회의 문제와 결함이 지속함에도 (노동조합의 발전, 생산기술발전, 국가의 개입으로 인해) 무산 계급의 수입 생활환경은 훨씬 개선되었다.

    둘째, 유물사관으로 알려진 그의 역사이론은 제대로 적중하지 않았다. 영국과 독일에서 제일 먼저 발생하리라는 사회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고, 사회주의 혁명 또한 자본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몇몇 후진국에서만 이루어졌다. 그것도 노동자와 무산 대중의 힘이 아닌, 지식인과 농민의 도움도 있었고, 언제나 폭력이 사용되었다.

    셋째,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고 마르크스 노선을 따르는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와 민주주의, 정의와 풍요를 잘 보장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오히려 그들은 자본주의적 요소를 시장에 도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넷째, 하나님이나 내세는 인간의 소망에 불과하기에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종교 투사론은 아무 것도 입증하지 못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어떤 것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와 포이어바흐의 종교투사론과 무신론은 우리가 열망하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고, 반대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에 근거한다. 인간의 심리적 소망은 사실 하나님의 존재 혹은 부재를 입증하는 증거라는 생각을 말아야 한다.

    다섯째, 종교가 소외를 산출하는 비인간적인 사회 조건의 산물이라 하지만 1917년 10월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한 소련에서도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다.(소련인구 다섯 명 가운데 1명 정도가 기독교를 믿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이것이 입증되려면 소외와 종교가 동시에 완전히 없어진 사회가 나타나야 한다. 그런 사회가 나타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에는 그의 주장을 입증하거나 반증할 만한 자료와 증거가 없다.

      • 사회적 역할에 대한 비판과 기여
        •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비판

    첫째, 그의 종교에 대한 일반론은 지나치게 과장되고 일방적이다. 그는 한 시대 나타난 기독교의 모습을 그것의 본질적인 성경이나 원리와 동일시하고 혼동했다. 역사적 시기에 타나났던 기독교에 대한 예리한 비판을 했던 것은 틀림없으나, 기독교에 대한 그의 이해는 매우 부족했다고 보인다. 그 단적인 예로, 초기의 기독교인들이 성찬 예식을 위해 모였을 때 사람을 잡아먹는 예식을 하였다고 생각했다(1847년 11월30일 런던 노동자 교육협회에서 했던 연설 내용 중에).

    둘째, 자신의 시대와 그 이전에 있었던 운동과 활동이면서 기독교적 신앙과 사상에서 그 원동력을 얻고 있던 혁명 운동과 개혁 운동을 무시해 버렸다. 이데 대한 몰이해와 경시는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산출했다고 보인다.

        •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여

    첫째, 마르크스의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부분은 매우 타당성이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오랫동안 노예제도를 용인하였고, 중세기 유럽의 농도 제도를 당연시 했고, 19세기 자본가들과 영합함으로 그 당시의 사회, 정체, 경제 체제를 옹호하며 가난한 계층에 대한 억압과 착취에 협력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 서구인들의 식민지 침략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선교사를 통한 침략과 약탈에 동조하고 협력하는 경향을 보였다.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내세의 행복을 설교함으로 위로하고 자선을 행했지만, 사회 구조 개혁(사회적 구원)보다는 개인의 구원에만 관심을 두었다.

    둘째, 마르크스의 종교비판은 천주교로 하여금 부자와 권력자를 멀리하고 가난한 계층에게 접근하며 사회 비판과 개혁의 역할을 취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 반대와 거부의 입장만 취하던 천주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동안에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공산주의를 발생시킨 원인 중에는 “종교에 대한 반동 어떤 지역에서는 특히 기독교에 대한 반항이 포함된다”고 보며 이에 대처하는 방법은 “정의와 사랑을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하여 실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셋째, 성서의 본래적 의미를 살리자면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해방신학이 기독교에서 일어났다.

      •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 진영 안에서도 종교의 성격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재평가와 재인식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비판적 마르크스주의자들 혹은 신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서 종교는 불의하고 비인간적인 사회체제를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역할만을 한다는 마르크스의 견해를 비판하며 기독교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  

    블로흐는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는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 선구자다. 그는 《희망의 원리》에서 세계적 변혁의 관점에서는 기독교의 메시아적 희망이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라고 보았다. 기독교의 메시아적 희망과 하나님 나라의 사상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기 때문에 혁명적 정신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 마코비치

    밀란 마코비치는 《무신론자가 본 예수》에서 예수는 인간 세상을 도피하거나 소외된 인간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불의한 사회질서의 변혁에 대한 동기와 희망을 제시하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가 변혁과 혁명의 원동력을 제시할 수 없고 아편과도 같은 역할만 한다는 마르크스의 견해는 잘못되었다고 보았다.

        • 가로디

    로제르 가로디는 프랑스 공산당의 지도적 이론가로 스탈린의 정책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기독교는 현실 세계에 용감하고 과감하게 대항하며 맞서는 종교이기도 하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대안적 미래》라는 책에서 진정한 해방을 가져올 수 있는 요소가 기독교 안에 있다고 보았다. 오히려 마르크스주의가 기독교처럼 인간의 존엄성과 신성함을 강조하지 못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라고 보았다. 그리고 기독교가 주장한 것처럼 수단과 방법은 목표에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적 사회를 건설한다고 외치면서 독재적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한다.

     

    • 오늘 우리의 기독교
      • 배우라

    칼뱅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의 진보적인 부의 분배에 관한 사상은 성경에 기초한 것이다. 즉 부자와 가난한자가 평균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첫 번째 원칙인 ‘사유재산의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가히 혁명적인 사상이다. 굉장히 보수적인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그의 경제관은 마르크스의 것과 비견할만 하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 이상을 채우고도 남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마르크스가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제대로 파악했더라면 그의 기독교에 대한 처절한 비판은 생기지 않았을 것 같다.

      • 기독교를 넘어서기 위한 디딤돌

    마르크스의 종교비판은 오늘날 기독교를 향해서 퍼부어진다면 어떨까? 전혀 타당하지도 않은 영향가 없는 비판에 불과할까? 아니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은 오히려 오늘날의 시대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고 있는 측면이 너무 크다.

    그 옛날 기독교는 노예제도를 용인하였고, 농도 제도를 당연시 했고, 19세기 자본가들과 영합함으로 그 당시의 사회, 정치, 경제 체제를 옹호하며 가난한 계층에 대한 억압과 착취에 협력하는 등의 모습으로 비판을 받았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내세의 행복을 설교함으로 위로하고 자선을 행했지만, 사회 구조 개혁을 향한 강한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가졌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기독교는 도덕적 하자가 많은 정치인 목회자, 성도들이 연일 뉴스상에 보도되고 있고, 교회는 돈을 빌려 몸집만 비대하게 만들고 있을뿐 사회에서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장로가 대통령이 되고 40%의 국회의원을 가진 한국기독교이지만, 사회의 사회, 경제의 민주화 요구는 더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빈부격차는 커져만 가고, 가난한 노동자의 삶은 더욱 핍폐해져가고 있다.

    오늘 우리 기독교는 마르크스의 비판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수없는 비판과 질타를 넘어 새로운 희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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