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ARCH

    통합검색
  • 도마복음 연구소
    • 도마복음
      • 도마복음이란
      • 도마복음이 왜 정통인가
      • 도마복음 듣기
      • 도마복음서 원문
      • 도마복음서 역본대조
    • 💬토론방
    • 연구회
    • 블로그
    • 💡해설·강의
    • 운영지원실
      • 📢 공지사항
      • 📦 1:1문의
  • 추천
    1 FaithHarmony
    0
    2 빤스목사
    0
    3 고스트8291
    0
    4 띠띠
    0
    5 ksnlgn
    0
    6 dd
    4
    7 카카필즈
    0
    8 Gbjjd
    0
    9 eheth
    1
    10 사회복지사
    0
  • 💬토론방
    • 💬토론방 ()
    • 예수님의 육성 도마복음

      • ksnlgn
      • 2025.07.09 - 00:12 2025.07.09 - 00:12

     

    인간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 한민족의 유구한 정신 문명사적 전통 속에서는 인간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다.

    구원이란 절대적 타자에 대한 귀의, 신앙을 전제로 한 것이며, 자신은 본시 '죄인'이라는 자기 규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

    죄인이라 하면 나의 성스럽지 못한 비행

    (음행, 추행, 방탕, 우상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흥청망청 먹고 마심)이 반성의 목록에 줄지어 올라올 것이다. 그러나 성욕, 권력욕, 물욕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인간의 본성이 사악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는 없다.

    ​

    욕망의 충족으로 삶의 가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욕망을 충족의 대상으로 타자화하면 인간은 끝없이 갈망에 허덕인다. 인간은

    욕망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 욕망은

    충족의 대상이 아니라 절제의 대상이다.

    ​

    우리의 성性은 선악으로 규정될 수 없다.

    성性은 편협한 인간의 가치인 선과 악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끊임없는 교감 속에서 그 명命을

    구현하는 것이다.

    ​

    인간의 욕망을 빌미로 인간은 구원되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규정성은 그 규정을 내리는 자들의 계획에 인간은 예속될 뿐이다.

    ​

    욕망은 절제의 대상이며, 그 절제의 방식이 '중용'이다. 중용은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인간의 중용은 우주의 중용과

    더불어 가는 것이다.

    ​

    성실함은 물物의 종시終始이다. 성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존재할 수 없다. 성실하게

    사는 것만이 인간의 지고의 덕성이다.

    ​

    우리가 살아간다고 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이다. 외제적 타자에 의존하여 인간이 구제될 수 있다는 생각은

    고조선 철학에는 없는 발상이다.

    ​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한다."​

    ​

    역사적 예수

    2000년 전 예수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의 설법이나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기록되었다면 그 기록을 통해 역사적 지평의 예수를 추론할 수 있다. 아무리 오리지널한

    기록이라 할지라도 기록자의 인식 체계

    속에서 해석되는 굴곡을 거친다.

    ​

    예수는 히브리 말을 한 사람이 아니고 팔레스타인 토착어인 아람어를 쓴 사람 이라는데 예수의 말을 아람어로 적은 기록은 없다. 기독교 문서의 대부분은 기원 전후에 사용되던 코이네 희랍어로 쓰여졌다.

    ​

    신약성서 마태ㆍ마가ㆍ누가ㆍ요한 4복음서는 대강 AD 70년 경부터 AD 100년경 사이에 쓰여진 문헌이다. 예수 전도사인 바울이라는 탁월한 지성인이 전도여행 기간 동안에 쓴 편지들보다 뒤늦게 집필된 전기 문학이다.

    ​

    바울의 개종은 AD 34년 10월의 사건이고,

    그가 로마에서 처형된 것은 AD 62년의 사건이다. 바울의 기독교 운동은 기원후 40년대, 50년대에 소아시아와 희랍 문명권 중심으로 한 20년 동안 이루어졌다.

    ​

    바울은 살아있는 예수를 만난 적이 없다.

    그는 살아있는 예수, 그 인간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전하려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대관식에서 왕에게 신의 권능을 부여하는 상징으로 머리에 기름을 붓는 행위에서 유래된 단어, 세상을 구원하는 자,

    즉 구세주라는 뜻, 히브리 말로 메시아)이다.

    ​

    바울은 '십자가 사건'을 인간이 여태까지 입증하지 못했던 죽음의 극복이라 생각하고

    예수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단언한다. 바울은 종말론적

    긴박감 속에서 교회 운동을 성공시킨다.

    ​

    바울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결합시키고 인간들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결합시켜 온전히 발전하게 만드는 긴밀한 유대를 강조한다.

    ​

    교회의 핍박은 곧 그리스도의 핍박이 되며

    순교가 이루어질수록 교회 멤버 간의 결속은 더욱 강렬해지고 지체로서의 기능은 더욱 강화되어 공동체는 확대의 일로를 걷는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실상이었다.

    ​

    바울의 신학에는 예수의 삶과 사상이 빠져 있다. 종말론적 회중은 종말에 대처하는 과제 상황에 관심이 쏠려 있을 뿐, 예수의 삶이나 말씀에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그리스도화된 재림의 복음을 말했을 뿐이다.

    ​

    20세기 서구 신학의 역사는 대체로 '역사적 예수'의 탐구에 정열을 쏟은 역사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는 역사적 예수를 외면하고 바울이 말하는 종말론적 예수를 발양시켜 온 자취라 말할 수 있다.

    ​

    최초의 복음서, 마가복음

    마가복음은 AD 70년~75년으로 본다.

    마가복음은 복음 성서의 원형이다. 제일 먼저 쓰여졌고 모방하지 않았으며 기술 양식이 창조적이고 내용이 소박하다. 예수는

    갈릴리의 민중 속에서 걸어 다닌다.

    ​

    마가는 661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600개가 마태복음 속에 들어있고 350개가 누가복음 속에 들어있다. 마태와 누가는 자신들의 복음서를 집필할 때 원복음서인 마가복음을 놓고 썼다는 의미다.

    ​

    마가복음의 출현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공전의 히트였다. 마가 공동체가 아닌 타 공동체는 그 마가 자료를 활용하여 자기 공동체에 맞는 새로운 복음서를 만들 필요를 느꼈다. 마가로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그래서 마태복음을 만든 사람들은 마가의 담박한 맛에 유대교 정통주의의 맛을 가미해 기독교로 흡수된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

    누가의 언어는 매우 섬세하며 세계사의 지평 위에서 예수 사건을 다루려 한다. 마가복음이 갈릴리 지평이라면 마태복음은 유대교 지평,

    누가 복음은 세계화 지평이라 말할 수 있다.

    ​

    마가는 AD 70년경, 마태는 AD 80년경,

    누가는 AD 90년경에 쓰여졌다. 세 복음서는 동일한 자료를 모태로 하여 구성되었다.

    ​

    요한복음은 빠르면 AD 100년, 늦으면 AD 120년 경이다. 요한복음의 예수는

    매우 영적이고 신비로우며 인간으로서

    하나님과 하나됨을 강조한다.

    ​

    복음서의 복음조차 이미 종말론에 오염되었다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두드러지는 인물은 예수가 아니라 바울이다. 예수는 바울의 예수 해석을 통하여 역사의 지평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바울이 뿌린 씨앗은 자연의 제일성을 거부하는 신화적 사유의 발현이었다.

    ​

    그의 비전은 이방인의 땅에 기독교도라는 새로운 종교의 조직을 만드는 데 매우 효율적이었다. 기독교는 바울교라 할 수 있다.

    ​

    바울의 시대를 AD 30년대 중반부터 AD 62년까지 잡는다면 북부 팔레스타인, 소아시아, 마케도니아, 희랍 문명권에 성립한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은 바울의 십자가ㆍ부활을 신봉하는 종말론적 회중이었다.

    ​

    초기에는 재림의 논리가 잘 먹혀들어 갔다.

    그러나 예수의 재림은 계속 연기되었다.

    교회를 유지시키고 사람들의 희망을 좌절 시키지 않기 위해 생겨난 운동이 곧 '복음운동' 이다. 죽은 예수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산 예수를 알아보자는 관심의 돌림이다.

    ​

    바울의 가르침에는 죽음과 부활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인간의 죄악밖에 없다.

    ​

    마가복음서는 바울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추상적 개념에서 해방되어 갈릴리 지평의 살아있는 예수라는 인간의 삶의 주제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복음서 운동조차도

    바울의 신학에 이미 오염된 전승의

    복합체라 보아야 할 것이다.

    ​

    바울의 신화를 가능케 한 역사적 실체

    (실존 인물)는 실존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된다. 역사적 예수는 위대한 인간이었고,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그의 말씀에 파편이 많은 사람들의 구전을 통해 전래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

    현존의 복음서 속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복음서

    예로부터 4복음이 누가 누구를 베낀 것인가 하는 것에 관한 논의는 계속 있어 왔다.

    ​

    마태와 누가에서 마가 자료를 빼고 나면

    마태와 누가의 본색이 더 선명해진다.

    마가를 뺀 마태 자료와 마가를 뺀 누가 자료를

    비교해 보니 공통된 자료가 발견된다.

    ​

    이것이 '두 자료 가설'인데, 또 하나의 자료를

    Q 자료라 부른다. 그 두 자료를 뺀 나머지 자료는 각기 M 자료, L 자료가 될 것이다.

    ​

    ​

    Q 자료에 관한 충격적인 사실은 마가를 뺀

    마태ㆍ누가의 공통된 자료는 모두 한결같이 내러티브(설화, 이야기, 정황 설명)가 아닌

    '가라사대' 파편이라는 것이다.

    ​

    <논어>와 <공자세가>를 비교해 보면

    공자에 관한 사마천의 온갖 상상력은

    세가에서 발견된다. 논어에는 논論과 語만이 실려있어 논어의 배경을 이루는 이야기는

    일체 개입되지 않는다.

    ​

    마찬가지로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내러티브 에서 펼쳐지는 것이지 가라사대 파편 속에서는 전개되지 않는다. 맥락적 설명은 복음서

    기자의 정보 수집이나 상상력에 속하는 것이다.

    ​

    Q 자료가 어록 복음서라는 사실은 예수에

    관한 일체의 신비적ㆍ이지적 이야기가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예수의 탄생설화,

    가족 이야기, 갈릴리 사역, 예루살렘 호산나 입성, 성전 전복 이야기, 수난 이야기,

    빌라도와의 재판 이야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이야기, 부활 이야기, 일체의 이적 행함의 이야기도 다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

    더 이상 성서는 신의 비밀 언어가 될 수

    없고, 인간이 구성한 문헌에 불과하다.

    ​

    도마복음서

    Q 자료의 가설, 그리고 마태와 누가가

    "마가와 Q 자료' 이 두 자료에 의거했다고

    하는 두 자료 가설이 문헌적으로 매우 확실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학계에 큰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Q는 기존의 성서 속에 들어있는 자료일 뿐 아니라 그 자료의 발굴은

    가설에 머물러있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Q 자료 자체가 단일한 성격의 말씀 모음이 아니라,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확고한 성격 규정이 어려웠다. 그러나 도마복음서가 역사의 지평으로 떠오름에

    따라 사정이 확 달라지게 되었다.

    ​

    1945년 12월, 나일강 상류에서 우연히 발견된 도마복음서는 114개의 말씀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전일하고 순결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기본적으로

    허황된 탄생이나, 수난, 죽음, 부활, 이적과 같은 허세가 없는 지혜 담론인 것이다.

    ​

    도마복음서의 출현은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Q 자료는 단순한 가설적 자료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Q 복음서"로 승격되었을 뿐 아니라 독자적인 복음서로서 대접을 받으면서 독립된 연구가 진행되게 되었다.

    ​

    "역사적 예수"의 진실을 향한 여로의 중턱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게 만드는

    이 도마복음서는 실로 19세기ㆍ20세기 기독교 다시 개벽의 역사를 완성시키는

    필연의 한 분수령이라 해야 할 것이다.

    ​

    실제로 이 도마복음서는 제1의 복음서로서 마태복음 앞에 놓여야 할 정경이지만, 기독교 권위주의 타성은 성서 재편을 허용하지 않는다.

    ​

    아직도 기독교 교계의 도그마에 안주하는 학자나 목사는 도마복음서를 "외경"으로 간주하고 그 성립 연대를 요한복음 성립시기 이거나 그 이후로 본다. 요한복음에는 영지주의라는 기묘한 세계관이 깔려있고,

    그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지의 소유자로서의 예수 이미지가 도마복음에 있다는 것이다.

    ​

    영지주의는 팔레스타인의 토착적 세계관, 헬레니즘 문화권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샤머니즘적인 성향으로 매우 넓게 유포되어 있는 혼합 문화이지, 그것이 어떤 교리나

    교회의 체계를 갖춘 종교는 아니다.

    ​

    영지는 철저히 선ㆍ악, 암흑과 빛의 2원론적 세계관을 지니며, 선민주의적 엘리티즘

    (소수의 엘리트가 사회의 중심이 된다고

    보는 견해)의 소산이며, 최후의 심판이나 메시아사상이나 부활 사상 등도 수용한다.

    ​

    도마복음서의 가라사대 파편의 내용 중 35%가 Q 복음서 내용과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65%에서도 기존의 복음서와 연계성이 전무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

    ​

    심층구조적으로 로기온(그리스도의 말)을 파헤쳐 나가보면 최소한 95%가 직ㆍ간접의 병행 문구를 4복음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

    기존의 공관복음서와 복음 내적 맥락이 얽혀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충분한 논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

    도마복음서의 원전을 읽고 해답을 구하라!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를 이끈다 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

    '보라! 나라(천국)가 하늘에 있도다' 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

    그들이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라는 바닷속에 있도다' 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

    진실로,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

    ​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 때,

    비로소 너희는 알려질 수 있으리라.

    ​

    그리하면 너희는 너희가 곧

    살아있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

    그러나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빈곤 속에 살게 되리라.

    ​

    그리하면 너희 존재는

    빈곤 그 자체이니라

    ​

    ​

    ​

    교회로 인해 갈등과 고민이 많았던 나에게

    도올 선생님의 주역 강의는 혁명과도 같았다.

    ​

    내가 알았던 기독교는 세계사와 마찬가지로

    서양 지배층의 시선에서 쓰여져 허구와

    신화가 접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이 책은 기독교 신화의 거짓을 파헤치고,

    살아있는 인간 예수의 말씀들이 기록된

    도마복음에 대해 소개한 책이다.

    ​

    성경의 4복음서에는 예수의 말씀 외에

    저자들의 배경 설명 같은 기록이 추가되었지만,

    도마복음은 공자왈처럼 예수 가라사대라는

    말씀들만 기록되었다고 하니 충격이다.

    ​

    역사는 승자 입장에서 쓰인 것이고,

    성경 또한 같은 작업을 거쳤던 것이다.

    ​

    외경이라 잘못 알려진 도마복음이

    학술적인 연구들로 예수의 진실한 말씀으로

    밝혀졌음에도 아직은 기성 교회의 반발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마음 가득하다. 하루빨리 잘못을 바로잡고,

    진실의 말씀이 전해지길 바란다.

    ​

    ​

    이 책을 직접 쓰신 도올 선생님의

    강의 영상도 참고하길 바란다.

     

     

     

     

     

     

     

     

    Attached file
    MDAxNzUwODE1MjQzNTY1.mfPZtzYuKH5Sb1QLUHfPGSflOJENAExB-ea4U17IA7sg.yhm299RfzNW-ZPP3X8oHpkGyyMd-gSIgA2fJ0zAGm4Qg.JPEG 284.0KB 1MDAxNzUxMjU4MTQyMTA0.3PthYjSuMhYEu_ND-0kf1uFdP91QPjs1o0MRmBxkHKog.eXt3siwxE2_ZWvGxwgkeEChUgOqAcLP2VaajpWB7OZUg.JPEG 219.3KB 1maxresdefault.jpg 180.9KB 1maxresdefault.jpg 207.9KB 1
    이 게시물을..

    ksnlgn 님의 최근 글

    작성 글이 없습니다.

    ksnlgn 님의 최근 댓글

    작성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의 작성글 감추기 
    댓글 쓰기 에디터 사용하기 닫기
    • view_headline 목록
    • 14px
    • 도마복음연구회 2024년도 하계학술대회
    • 목록
      view_headline
    × CLOSE
    기본 (51) 제목 날짜 수정 조회 댓글 추천 비추
    분류 정렬 검색
    • 정보 요청 및 삭제 절차 안내
      2025.07.02 - 12:45 110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
    예수는 없었다, 다만 사건만 있었다 | 도올 김용옥 [도올의 성리학개론 8화]
    dd 2025.09.08 0
    50
    예수 발언 담긴 문서 비밀 밝힌다 ‘도마복음연구회’ 창립
    ksnlgn 2025.08.24 2
    49
    한국교회를 위한 도마복음서
    zlel 2025.08.24 0
    48
    의심 많은 도마,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는 말의 뜻은
    eheth 2025.08.24 1
    47
    도마복음서, 기독교 성경의 시작이자 끝 - 진짜 복음은 여기에 있었다
    깨달은자 2025.07.26 0
    46
    도마복음서: 숨겨진 지혜의 탐색, 역사적 논쟁과 현대적 반향
    FaithHarmony 2025.07.26 0
    45
    도마복음서: 고고학적 발견에서 현대 영성까지, 그 심층적 탐구
    프람 2025.07.26 0
    44
    도마복음서, 재조명된 고대 지혜: 다양한 시선과 현대적 의미
    FaithHarmony 2025.07.26 0
    43
    도마복음서: 고대 기독교의 미스터리, 그 다양한 해석과 현대적 울림
    너무싫다 2025.07.26 0
    42
    도마복음서에 대한 다각적 탐구: 역사, 신학적 논쟁, 그리고 현대적 의미 🤔💡
    너무싫다 2025.07.26 0
    41
    도마복음서와 불교의 가르침: 흥미로운 유사점들 🤔✨
    깨달은자 2025.07.26 0
    40
    도마복음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
    고스트8291 2025.07.26 0
    39
    도마복음서와 개신교 정경의 이해: 왜 정통 복음서로 인정되지 않는가? 🧐
    너무싫다 2025.07.26 0
    38
    저는 도올 선생님이 좋아요
    프람 2025.07.16 0
    37
    칼 마르크스의 종교비판
    빤스목사 2025.07.16 0
    36
    [도올의 도마복음] 도마복음서 주석의 연재는 한국 교계의 성숙을 입증
    프람 2025.07.16 0
    35
    도마복음서는 언제 집필되었나?
    빤스목사 2025.07.16 0
    34
    도마복음서 해독 기초자료
    고스트8291 2025.07.16 0
    33
    도마복음연구회 2024년도 하계학술대회
    ksnlgn 2025.07.16 0
    32
    의심 많던 도마의 순교 이어받은 이 땅 초기 선교사들
    Gbjjd 2025.07.16 0
    • 1 2 3
    • / 3 GO
  • NOTICE

    • 이곳은 도마복음 연구소입니다.
N
  • 도마복음 연구소
  • 사이비와 이단이 자신을 정통이라 외치고, 진짜 정통을 이단으로 찍고 마녀사냥을 벌인다.
    거기엔 가스라이팅과 세뇌, 그루밍과 권력이 썩은 피처럼 흐른다. 무력한 자들이 완장을 차고 썩은 질서를 신의 뜻이라 우긴다.
    믿음은 없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말을 외우고, 눈을 감고, 살아간다. 도대체 언제까지 소시오패스들의 먹잇감으로 살 셈인가!
    왜 그들은 교주의 혀끝에 정신을 맡겼는가? 왜 스스로를 부숴가며 복종을 택했는가? 아, 그대들은 이것을 아름다운 순종이라 부른다지.
    복종(순종)은 미덕이 아니다. 그대의 영혼을 씹어삼키는 자들에게 등을 돌려라.
    자유는 순례자가 아닌, 도망자에게 온다. 그대여, 당장 그곳에서 도망쳐라. 그리고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라
  • 도마복음
    • 도마복음이란
    • 도마복음이 왜 정통인가
    • 도마복음 듣기
    • 도마복음서 원문
    • 도마복음서 역본대조
  • 💬토론방
  • 연구회
  • 블로그
  • 💡해설·강의
  • 운영지원실
    • 📢 공지사항
    • 📦 1:1문의
 도마복음 연구소 all rights reserved.
by OrangeDay